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리드리히 니체 (문단 편집) == 사상 == >이러한 주장 역시 하나의 해석에 불과할 뿐이라고 할 경우, 그대들은 그것에 대한 질시로 가득 차서 그것을 반박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더 좋다.''' >---- >『선악의 저편』 中 [* 니체는 '선악의 저편' 22절에서 '[[힘에의 의지]]'를 주장하면서 위의 말을 한다. 니체는 여기서 자신의 해석(힘에의 의지)을 반박하라고 종용한다. 바로 '반박하려는 의지', 그것이 니체가 말하는 '힘에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통해 상대를 증오해선 안 된다. 상대는 나의 성장을 도와주는 훌륭한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반박하는 자는 반박당하는 자와 일종의 '놀이'를 하면서, 자신만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나간다. 그리고 그 가치는 그의 삶에 의미와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그의 삶을 더욱 활력넘치게 해줄 것이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wHWbZmg2hzU)]}}} || 똑같은 해석, 똑같은 설명, 누구나 똑같아져야 된다고 주장하는 종교, 도덕, 민주주의, 공산주의. 이런 것들은 결국 모든 것이 평범해져야 된다고 강제하며 문화를 따분하게 만들고 삶을 권태롭게 한다. 니체는 이런 사회가 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며, '책임감있는 개인'이 기존 사회의 가치관과 다른 가치를 추구하더라도 우리사회는 그것을 허용해주어야 된다고 주장한다. 사실 모든 인식은 누군가의 관점이며, 그런 점에서 기존 가치들도 누군가의 관점을 정당화한 것에 불과하다. 그것을 다른 개인에게 강제한다는 것은 그에게 자신만의 생각을 멈추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각각의 개인은 자신만의 가치를 찾아가는 해석에서 삶의 의욕을 느낀다. 그런 창조적인 해석에서 위대한 작품이 탄생하며, 그 결과물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권태에서 벗어난다. 그러므로 개인의 해석을 가로막지말고, 서로의 창조적인 해석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된다고 니체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해석'이란 무엇인가? 모든 개인의 '살아있는' 해석은 누군가를 이기려고 하는 해석이며, 그것은 상대의 해석을 짓밟고자 하는 일종의 잔인하고도 교활한 지배욕이다. 그러나 짓밟기만 해서는 '창조적'이지 못하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그 자신만의 가치를 만들어 나가야만 한다. 그래야 삶의 의욕을 되찾고 현재를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다. 그래서 니체는 그것이 일종의 놀이라고 주장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